프로젝트 헤일메리, 기대 없이 갔다가 제대로 빠져버린 영화

솔직히 SF 영화라고 해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.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비주얼은 좋아도 이야기가 허술하거나, 반대로 이야기는 탄탄한데 지루한 경우가 많았거든요.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. 영화는 기억을 잃은 채 혼자 우주선에서 깨어난 주인공 그레이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.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그가 왜 이 우주선에 타게 됐는지, 지구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맞춰지는 구성인데, 이 흐름이 생각보다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. 억지로 끌어당기는 느낌 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꽤 깊이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게 됩니다.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이라는 걸 알고 가긴 했는데,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레이스라는 인물이 먼저 보였습니다.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캐릭터에 집중하게 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, 이번엔 정말 그랬습니다. 고뇌하는 장면에서는 같이 답답하고, 무언가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같이 긴장이 풀리는 식으로요. 연기가 관객을 설득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. 이야기 중반부터 등장하는 외계인 로키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입니다. 처음엔 전혀 다른 존재인데,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둘 사이에 쌓이는 관계가 꽤 진지하게 그려집니다. 억지로 감동을 유도한다는 느낌이 없어서 오히려 더 와닿았어요. SF에서 외계인이 나온다고 하면 흔히 예상하게 되는 전형적인 장면들이 있는데, 이 영화는 그런 클리셰에서 제법 자유롭습니다.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, 책을 읽어보면 과학적인 풀이 과정이나 설정의 밀도가 훨씬 촘촘하다고 하더라고요.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많이 덜어내는 대신 두 인물의 관계와 감정선 쪽에 더 집중한 것 같습니다. 어떤 면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, 영화라는 매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잘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음악도 인상적이었습니다. 전반적으로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오히려 경쾌한 편인데, 그게 주인공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희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. 중반에 등장하는 Sign of the...